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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미루어선 안될 일제의 아픔 치유
 
온주신문

 

 

 

▲     ©온주신문

< 이명수 / 아산시 갑 국회의원 >

올해도 어김없이 ‘8·15’가 우리곁에 다가왔다. 광복 75주년을 맞으면서 국가의 힘이 없어 국민들이 당해야 했던 피해는 반드시 국가가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는 소신을 새삼 새긴다. 대일항쟁기 전후배상의 문제는 외교적 노력과 국가적 배려가 동시에 필요한 사안이라는 믿음이다. 8년 전 광복절 즈음 찾아뵀던 고향 아산 신창의 ()박광현 어르신의 생전 모습이 선연해온다. 열아홉의 나이에 일본에 강제징용되어 아오모리현(靑森縣)의 오미나토항에서 노역으로 고생하다 귀국선이던 우키사마 호에 승선했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왔던 회고담은 후손들의 가슴에 아프게 전해왔다.

 

우키시마 호는 7천여명의 강제징용 한국인을 태우고 귀국 도중 갑자기 항로를 바꾸어 일본 중부 동해 연안 마이즈루항을 향했고 의문의 폭발로 최소한 5천여명의 강제징용 한국인이 숨졌던 사고였으나 아직 제대로 진상조사조차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타이타닉호가 15백여명이 사망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우키시마 호 폭발사고 의혹이 얼마나 큰 사건이었는지 미루어짐작 할 수 있다. 고 박광현 어르신은 구사일생으로 우키시마 호에서 살아 생환할 수 있었고 얼마 안돼 다시 한국전쟁에 참전한 후 노후엔 변변한 재산이나 보상 없이 한국전쟁 참전 유공자에게 주어지는 월 20여만원의 정부지원금으로 어렵게 사셔야만 했다.

 

사살, 고 박광현 어르신과도 같은 분들이 어디 한두 분인가? 필자는 공직에 있을 때나 의정활동에서나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보상에 우선적으로 관심을 가져왔다. 입법 발의도 하고 정부에 촉구도 하고 직접 일본에 가서 정치인과 관련 전문가들도 만나 보았다. 우키시마 호 의혹 뿐만이 아니다. 아직 해결의 실마리조차 찾지못하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가 일제강점기 당시 한국인 학살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관동대지진 한국인 피해이다. 관동대지진 피해자 문제를 비롯해 수없이 많은 사안이 변변한 실태 조사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채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가고 있는 안타까운 실정이다. 일본의 공권에 의한 한국인 학살 정황까지 공공연하게 확인되는 사안이라는 점에서 진상조사와 보상의 필요성은 더욱 시급하고 중요하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현재 정부는 1923년 관동대지진 한인 피살 등 일제에 의한 피해자들에 대한 정확한 사실조차 스스로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201311월 주일한국대사관에서 관련 명부가 발견됐으나 진상규명 관련 전담 부처조차 없는 상황이었다. 필자는 2016년 제20대 국회에서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주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대표발의하는 등 노력을 기울인 바 있으나 법안은 통과되지 못했고 이후 모두 9건의 유사한 법안들도 실효성을 얻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따라서 관동대지진과 우키시마 호 침몰사건을 비롯한 일제에 의해 자행된 인도주의에 반하는 피해의 진상규명을 국무총리 소속 대일항쟁기강제동원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등지원위원회에서 실시하도록 해야 한다. 나아가 위원회의 상설화, 피해신고와 지원금 신청 기회를 제한한 현행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 개정도 반드시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국가적으로 국가의 힘이 없어 국민들이 당해야 했던 피해는 반드시 국가가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며, 이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 높아져야 한다. 나아가 한일관계 또한 과거사에 대한 명확한 사과와 인도적이고도 실질적인 보상이 선행되어야 한다. 진정한 화해와 협력은 역사에 대한 진실된 성찰과 반성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얼마전 광복 75주년을 앞두고 한국과 일본 기독교계에서 ‘8·15 광복·패전 75주년 한·일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일본그리스도교협의회가 중심이 된 ·일 화해와 평화 플랫폼간담회에서는 한국의 광복절이자 일본의 패전일인 815일에 앞서 위안부와 강제징용, 관동대지진 학살 등 일본의 책을 담은 성명서를 발표했고 815일 당일에는 일본 현지에서도 광복절 선언문을 발표한다 하니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민간 외교 분야에서의 이러한 움직임은 공공분야와 공식적인 한일관계에서 가시적인 성과로 이어져야만 한다.

 

다시 ‘8·15’가 오기 전에, 고 박광현 어르신 같은 역사적 피해자의 아픔과 고통이 조금이라도 치유되었으면역사는 끊임없이 흐르고 새로운 내일은 반드시 밝아 오리라.


기사입력: 2020/08/28 [10:43]  최종편집: ⓒ 온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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